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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겨울 장백산에 올라 | ||||
| 작성자 | 샛별 | 시간 | 2009-5-21 | 조회수 | |
겨울 장백산에 올라
엄동에 장백산(長白山, Changbaishan)을 오르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때는 세밑이었는데 장백산에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구름이 낮게 떠 있고 눈보라가 불어쳐 신비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일행 중 몇 사람은 아예 등산계획을 포기하고 "머리위에는 흰 눈이 내리고 발 아래에는 뜨거운 온천물이 솟는" 옥외온천으로 방향을 돌렸다.
자동차가 더는 앞으로 가지 못하게 되자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바로 가까이에서 이 명산을 보게 되었다. 두터운 구름이 낮게 드리워 산봉을 내리 누르고 사나운 바람이 함박눈을 몰아가지고 불어쳐 보이는 것은 온통 흰 색뿐이고 어느 것이 산이고 어느 것이 구름이고 어느 것이 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순간 고독감이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안내자를 따라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우리가 출발한 곳은 섭씨 83도의 온천이 이 곳을 경유하는 장백산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온천물에서 생겨나는 뜨거운 김에 북풍도 이 곳에서는 기가 죽어 조용했고 주변의 나무에는 하얀 서리꽃이 만발해 있었다.
"걸음마다 다른 경관"이라는 말이 정말 맞았다. 서리꽃의 경관이 아직 가셔지지 않았는데 자작나무숲이 흰 빛을 번쩍이며 다가왔다. 전하는데 의하면 이 자작나무숲은 해발
자작나무숲을 경유하니 눈앞에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나타났다. 눈속을 흐르는 시냇물은 가끔 흰 물보라를 만들기도 하는데 금방 지나온 온천물과는 전혀 다른 찬 물이었다. 핸드폰 밧데리까지 얼어터지는 이 찬 기온속에서 이 열은 시냇물이 어떻게 얼지 않을까? 이 것 또한 장백산의 신비함이 아니겠는가!
시냇물을 지나니 개활지가 나타났다. 이제 멀지 않으면 장백산 폭포를 볼수 있을것이라고 마음을 위안하는데 눈보라가 앞을 가려 이제 얼마를 더 가야 할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백산 폭포가 우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위에는 창망한 하늘이 걸려 있고 주변에는 온통 흰 눈이 덮여 있는데 은색의 갑옷을 입은 용사가 절벽에서 혹한과 싸움이라도 하듯 장백산 폭포는 양쪽에 옥색의 얼음기둥을 만들며 변함없이 절벽을 뛰어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등산길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왼쪽은 흰 눈의 담장이요 오른쪽은 돌로 쌓은 방호벽이고 발 아래는 인공으로 만든 돌 계단이었다. 이 등산길은 지붕까지 있어 마음놓고 등산할수 있게 만든 시설이었다. 이 등산길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는 아찔한 산비탈에 갈 지자로 되는 오솔길을 통해 산을 오르면서 위에서 돌이 굴러내릴까 가슴을 졸이며 올랐다고 한다. 얼마 오르지 않아 이 등산길의 종착역에 도착했는데 문이 눈에 막혀 도저히 문을 열수 없었다. 한참 노력한 끝에 문을 여니 눈보라가 더 세게 불어치고 가시도는 10m도 안 되는 듯 했다. 눈보라를 헤치고 산 마루를 넘으니 네 면이 산에 둘러쌓인 개활지가 나타나고 가벼운 화산석이 여기저기 모습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천지(天池)에 이르렀다. 화산 폭발로 자연 형성된 천지는 수면 해발이 2189.1m로 세계적으로 해발이 가장 높고 물 깊이가 가장 깊은 고산 호수이다. 높은 정상에 있는 천지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구가 없고 물이 흘러나가는 출구만 있지만 천지의 물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겨울에 보는 천지물은 "맑은 하늘아래 은빛을 뿌리다가 자욱한 빗바람에 면사포를 쓰는" 여름날의 경관은 연출하지 않았지만 눈보라와 자욱한 안개속에서 그토록 신성하고 신비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백산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그지없어 천지를 볼수 있는 사람이 몇 몇 안 된다고 한다. 이날도 장백산 천지는 눈보라에 모습을 감추어 나는 천지의 모습을 다는 볼수 없었다. 산을 내릴때 우리는 눈이 덮인 돌 계단을 미끄럼질쳐 내렸다. 다시 장백산 폭포에 돌아왔는데 눈보라가 언제 불었던가 싶에 하늘이 파랗게 개여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폭포는 더욱 아름다웠다.
